
스마트폰의 건강 앱을 열어보면 오늘 걸은 걸음 수가 표시된다. 출퇴근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는데도 5천 걸음을 넘지 못한 날이 있는가 하면, 여행이나 외출을 한 날에는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아도 1만 걸음을 훌쩍 넘기도 한다.
흔히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에 1만 걸음을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매일 1만 걸음을 걷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사무직과 하루 종일 매장을 돌아다니는 서비스직의 보행량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직업이라도 연령, 거주 지역, 대중교통 이용 여부에 따라 걸음 수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람은 하루에 평균 몇 걸음을 걸을까?
최근 스마트기기 이용자 자료에서는 한국 이용자의 하루 평균 걸음 수가 1만 걸음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2025년 가민 커넥트 데이터 보고서를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이용자의 하루 평균 걸음 수는 9,969보로 집계됐다. 다만 이 수치는 건강과 운동에 관심이 높아 스마트워치나 운동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평균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공식 국가조사에서는 정확한 평균 걸음 수보다 일정 시간 이상 걷는 사람의 비율을 주로 조사한다. 질병관리청의 2025년 지역사회건강조사에서 걷기 실천율은 49.2%였다. 성인 두 명 중 한 명 정도만 권장 기준에 해당하는 걷기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보면 나머지 절반은 일상적인 걷기조차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1. 연령별 걸음 수, 젊다고 반드시 많이 걷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젊은 사람이 노인보다 많이 걸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학교와 직장에 다니고 외출도 잦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조사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한 국내 모바일 보행 데이터 분석에서는 20대의 하루 평균 걸음 수가 6,482보, 30대가 6,851보, 40대가 7,191보, 50대가 7,868보로 집계됐다. 60대는 8,555보, 70대 이상은 8,608보로 오히려 고령층의 걸음 수가 더 많게 나타났다. 이 자료 역시 특정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의 기록이므로 전체 국민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연령별 생활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20~30대는 출퇴근과 약속이 많지만 자동차, 택시, 배달 서비스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하루 대부분을 학교나 사무실에서 앉아서 보내는 사람도 많다. 운동을 따로 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걸음 수가 적을 수 있다.
40대는 직장과 육아가 겹치는 시기다. 활동량이 많아 보이지만 실제 근무시간은 대부분 앉아서 보내고, 출퇴근도 자동차로 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을 위해 걸어야 한다는 필요성은 느끼지만 운동할 시간이 부족한 연령대이기도 하다.
반면 60대 이후에는 건강관리를 목적으로 걷는 사람이 늘어난다. 은퇴 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아침이나 저녁마다 공원, 하천, 산책로를 걷는 경우도 많다. 젊은 층은 이동 과정에서 걷는 비중이 크다면 고령층은 운동 자체를 목적으로 걷는 비중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노년층의 걸음 수가 많다고 해서 모두 충분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걷는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짧은 거리만 여러 번 이동했다면 심폐기능을 높이는 운동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반대로 걸음 수가 적더라도 빠르게 걷거나 계단을 이용한다면 운동 강도는 더 높을 수 있다.
따라서 건강을 평가할 때는 걸음 수뿐 아니라 걷는 속도와 시간, 운동 강도를 함께 봐야 한다. 질병관리청도 혈압과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 한 번에 30분 정도의 유산소운동을 주 5회 이상 실천하는 방식을 권고하고 있다.
2. 직업별 걸음 수가 다른 이유, 사무직은 운동을 따로 해야 한다
하루 걸음 수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는 직업이다.
사무직 근로자는 출근한 뒤 컴퓨터 앞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회의실이나 화장실을 오가는 이동을 제외하면 근무시간 중 걸을 일이 거의 없다. 점심식사도 건물 안이나 가까운 식당에서 해결하고 자동차로 출퇴근한다면 하루 걸음 수가 3천~5천 보 수준에 머물기도 한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침실에서 책상까지 이동하고 식사를 위해 주방을 오가는 것이 하루 활동의 전부가 될 수 있다. 의식적으로 산책하지 않으면 2천 걸음도 채우기 어렵다.
반대로 판매직, 서비스직, 간호사, 배달원, 현장 근로자는 업무 자체가 신체활동이다. 매장을 오가거나 병실을 이동하고 물건을 나르면서 자연스럽게 걸음 수가 증가한다. 우편 배달이나 물류, 건설 현장처럼 넓은 구역을 반복해서 이동하는 직업은 하루 1만 걸음을 훨씬 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걸음 수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건강한 것은 아니다.
업무 중 걷기는 휴식 없이 오랜 시간 이어질 수 있고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불편한 자세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걷기와 달리 근골격계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서비스직이나 현장직 근로자는 충분히 걷고 있더라도 근력운동과 스트레칭, 휴식이 별도로 필요하다.
사무직은 반대다. 체력적인 업무 부담은 적지만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 WHO는 신체활동을 운동 시간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업무, 이동, 가사활동을 포함한 모든 움직임으로 본다. 일주일에 최소 150~300분의 중강도 유산소 신체활동을 하고, 주요 근육을 사용하는 근력운동을 주 2회 이상 실천하도록 권고한다.
결국 직업별 차이를 고려하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하루 1만 걸음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사람은 무조건 걸음 수를 더 늘리기보다 피로를 회복하고 근력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장시간 앉아 있는 사무직은 한꺼번에 운동하기보다 한 시간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빠르게 걷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3. 하루 몇 걸음이 적당할까? 운동량과 비만의 관계
걷기의 가장 큰 장점은 특별한 기술이나 비싼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운동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자신의 체력에 맞춰 시작할 수 있고, 일상적인 이동과 운동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하루 1만 걸음을 채워야 할까?
최근 대규모 연구에서는 건강 효과를 얻기 위해 꼭 1만 걸음을 걸을 필요는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2025년 공개된 국제 연구를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하루 2천 걸음을 걷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7천 걸음을 걷는 사람은 전체 사망 위험이 47% 낮았고, 치매 위험도 38% 낮게 나타났다. 건강상 이점은 걸음 수가 늘어날수록 증가했지만 7천 걸음 이후에는 추가 효과가 점차 완만해졌다.
평소 3천 걸음밖에 걷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1만 걸음을 목표로 하면 며칠 안에 포기하기 쉽다. 처음에는 기존 걸음 수에서 1천~2천 걸음 정도를 추가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하루 1천 걸음은 보폭과 속도에 따라 약 8~12분 정도 걸으면 채울 수 있다.
걷기는 체중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체중 70kg인 성인이 보통 속도로 30분 정도 걸으면 개인의 속도와 체력에 따라 약 100~150kcal를 소비할 수 있다. 한 번의 걷기만으로 체중이 크게 줄지는 않지만, 매일 반복하면 장기간의 에너지 소비량에는 상당한 차이가 생긴다.
다만 많이 걷는다고 해서 식습관과 관계없이 살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걷기로 150kcal를 소비한 뒤 달콤한 음료나 간식을 먹으면 운동으로 소비한 열량을 쉽게 되돌릴 수 있다. 비만 예방을 위해서는 걷기와 함께 총섭취량, 음료, 야식, 수면습관을 관리해야 한다.
질병관리청의 2025년 지역사회건강조사에서는 성인의 자가보고 비만율이 35.4%로 나타났다. 전년도 34.4%보다 1.0%포인트 높아졌으며, 같은 조사에서 걷기 실천율은 49.7%에서 49.2%로 낮아졌다. 두 지표만으로 걷기 감소가 비만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국민의 신체활동 부족과 체중 증가가 동시에 중요한 건강문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대한민국 사람의 하루 걸음 수를 하나의 숫자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스마트기기 이용자는 하루 1만 걸음에 가까운 기록을 보이기도 하지만, 공식 조사에서는 권장 수준으로 걷는 성인이 절반 정도에 그친다.
건강을 위해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걸음 수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움직이고,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며,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하루 3천 걸음을 걷는 사람이라면 우선 5천 걸음을 목표로 하고, 익숙해지면 7천 걸음까지 늘리는 방식이 좋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고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걷거나 점심식사 후 15분만 산책해도 하루 걸음 수는 크게 달라진다.
1만 걸음이라는 숫자를 채우지 못했다고 운동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매일 꾸준히 걷는 5천~7천 걸음이 일주일에 한 번 몰아서 걷는 2만 걸음보다 생활습관을 바꾸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국 걷기는 기록 경쟁이 아니라 비만과 만성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평생 이어가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운동이다.